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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벤트 (2015년 9월)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한국시간으로 금일(10일) 새벽에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가 개최되었습니다.
새로운 iPhone 6s와 iPad Pro, Apple Pencil, Apple TV 등이 공개되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많은 매체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기록 차원에서 공개된 주요 영상 위주로 정리해 봅니다.


iPhone 6s


iPad Pro


Apple Pencil


New Apple TV

Steve Jobs : 2005 Stanford Commencement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하드를 정리하다가 나온 자료 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현재 Apple社의 CEO인 '스티브잡스'가 한 연설 내용 입니다. (당시 모 사이트에서 '펌'작업으로 저장해 두었던 자료인데, 당시 출처에 대한 개념이 '판타지'여서 기록이 없네요, 자료를 만들어 주시고 번역 해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WWDC 2006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8월 7일...샌프란시스코에서 Apple社가 매년 개최하는 WWDC 2006(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2006) 행사가 개막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Apple의 '스티브잡스(Steve Jobs)'는 이번 WWDC 개막 기조연설을 통해 새로운 신제품을 소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던 iPod 신제품과 Intel의 Core 2 Duo 프로세서를 사용한 제품이 소개될 것이라는 예상을 무너트리고 Dual Core Xeon 프로세서를 두개 장착한 Mac Pro라는 데스크탑을 발표 했습니다. 실제 물리적인 프로세서는 2개를 장착하였지만, Dual Core 프로세서이다 보니, Quad Core를 사용하는 형태이며, 최대 16GB 까지 메모리를 확장 사용가능합니다. 그리고 ATI의 X1900XT 또는 Nvidia의 Quadro FX4500 나 GeForce 7300GT 그래픽카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GeForce 7300GT의 경우 4개의 PCI-E Slot를 통해 멀티그래픽카드 구성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2개의 SuperDrive(DVD+R DL/DVD±RW/CD-RW)와 2개의 Gigabit Ethernet, IEEE1394 a/b, Optical Digital Audio Port 등을 제공하고 옵션으로 Airport Wireless, Bluetooth 2.0 + EDR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 많은 맥유저가 기다리고 있던, OSX 새로운 버전인 OSX 10.5 Leopard(레오파드)의 Beta 버전이 공개되었습니다.(현재는 개발자들에게만 공개/제공되고 소비자용으로는 2007년 봄에 출시한다고 합니다.) 몇 가지 주요특징을 살펴보면 64Bit를 지원하고, Time Machine 이라는 시스템복원 프로그램을 추가하여 시스템 전체 또는 각각의 어플리케이션 단위로 백업 및 복구가 가능하며, Mail에서 템플릿 지원과 iCal과 연동이 가능 합니다. 그리고 iChat의 경우 화상 채팅시 배경설정이 가능하고, 원격제어 및 스크린 공유로 공동작업등을 할 수 있으며, Spacer 라는 가상 화면 프로그램이 추가되어 여러개의 바탕 화면을 구성, 활용할 수 있습니다.

OSX의 매력적인 기능인 Widget의 경우, 사용자가 Widget을 제작할 수 있는 WidgetCode라는 Tool이 포함되었으며, iCal의 경우 공동작업 기능이 더해졌습니다.

기타, Intel Xeon 프로세서를 사용한 1U 사이즈의 XServer와 3U 사이즈의 최대 7TB 용량을 구성할 수 있는 XServer RAID 를 함께 발표했습니다.

[관련사이트]
http://www.apple.com/macpro : Mac Pro
http://www.apple.com/macosx/leopard : OSX 10.5 Leopard
http://www.apple.com/quicktime/qtv/wwdc2006 : WWDC 2006 Keynote

P.S :
매번 가고싶지만...웹사이트와 QuickTime 동영상을 통해 접하게 되는군요.
내년에는 꼭 참가해 보고 싶어요~~"

[Preview] Macbook...살짝쿵...사용기...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요즘 대대적인 집안정리 중이다 보니....
Preview or Review 를 쓸겨를이 없네요~~
그래도 사진에 목말라 있으실 분들을 위해....
살짝쿵 사용기를.....(부실하다 욕하지 말아주시길...)


이 맥킨토시에 관해...(About?)
1.83GHz Intel Core Duo & 2GB DDR2 SDRAM


예전 Mac 노트북을 사용해 본적이 없어...비교하기는 힘들지만,
개인적으론 키감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뭐라 말하긴 힘들지만, 새로운 느낌이 좋았습니다.)


측면에서 화면을 찍어 보았습니다.
실내에서 밤에 촬영을 해서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기는 하나
반사가 생각보다 심한편 입니다. 밝은 낮에는 정면이 아니면 보기 힘들 듯...


iChat 사용을 위한 카메라와 마이크 입니다.
아직 사용해 보질 않아서...(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키보드 전체를 찍어 보았습니다.
요즘 몇몇 맥동호회 및 해외에서 흰색 Macbook의 팜레스트 변색에 대한 문제가 나오고 있더군요...(젠장...)
그래서 구입시에 팜레스트 보호시트 구매를 권유(?)하고 있던데....
누런(?)색으로 변색 되겠죠?


(초점이...)
충전 중 입니다. Macbook 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 입니다.
Macbook Pro 부터 적용된걸로 아는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배터리 사용시간의 경우 한번 충전을 하면 배터리 잔량이 10~20% 정도 남아있을 때까지 쓰는데,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평균 2~3시간 정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도 나중에 다시한번...)

그럼 앞으로도 계속....

[Preview] Macbook...Memory Up & Start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바로 이어서...
이번에는 Memory Upgrade 와 시동을...


Macbook 을 뒤집고...
베터리를 분리 하시면 Memory Upgrade 방법이 나옵니다.
나사의 위치가 애매하고 단단히 조여 있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로 인한 당황으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


계속 고생중...
나사가 마모될까 두려움 + 슬슬 열받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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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쓰시는 분들은 안경 나사 조이는 드라이버를 사용하면 좋습니다.
저는 3.5인치 외장 하드에 딸려온 작은 드라이버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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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분리..
위에 스위치(?) 같은 것을 왼쪽으로 밀면 메모리가 약간 빠집니다.
그 후 양쪽 끝을 잡고 당기면 빠집니다.


메모리 교체 후 덮개를 설치하기전에...


덮개 설치 완료....
덮개 설치시 메모리 보호용 스펀치가 밀려 덮개가 잘 끼워지지 않더군요.
설치시에 덮개를 살짝 끼워두고 스펀치를 작은 (1자) 드라이버로 눌러주면 됩니다.


구동 시작...
예전에 사용하던 Mac 이 G4 - 400Mhz라 부팅이 매우 빠르게 느껴지더군요.


설치 과정은..생략하고..
부팅 완료...

[Preview] Macbook...Intro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어찌어찌 하여 당분간 Macbook을 사용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잘 어찌어찌하면 생길 수도..물론 돈은 내야 하지만...T.T)

암쪼록, Macbook 도착하여 오픈케이스를 진행하며, 나중에 상세한 Review를 쓰도록 하고
지금은 간단하게 Preview 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 상자가 작아서 관심도 없어...거의 하루간 방치....기쁨을 하루 놓침.


충격 방지용 쿠션(?)과 비닐에 잘 포장된 진짜 Macbook 박스.



박스 View...한쪽은 닫혀 있는 Macbook...다른 한쪽은 Open 된 Macbook


박스를 열다...
잘 정돈된 느낌이랄까....그리고 내용물의 부실(?)...


모두 꺼내 놓고...
설치 CD와 메뉴얼이 함께 동봉된 작은 박스 하나..
부직포에 담겨 있는 Macbook
60W 아답터와 친구들...
그리고...리모콘...


드디어...Macbook(상단)
큰 NDS Lite 같은...(역시 지문의 압박이 먼저 걱정되는 군요)


Macbook(하단)
미끄럼 방지용 고무와 베터리 분리용 Lock 이 전부...
너무 심플하다 못해 허무함....


개방...
심플한 키보드...부담스러운 순백색....
사용전에 손을 꼭! 씻어야 할 듯....
내부 재질은 역시나 NDS Lite와 같음....(어쩌지?)

P.S : 사진을 위해 협조해준 회사 회의실과 SONY U20에게 감사를...
계속된 Preview를 기대해 주세요...

Macbook 출시!!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드디어 13.3 인치 와이드 스크린을 장착한 Macbook 이 출시되었네요.(미국기준...)

듀얼코어의 뛰어난 성능에 부담되는 가격과 무게를 자랑하던 Macbook Pro에 비해서 적당한 성능과 가격, 무게가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OSX 와 Windows 함께 쓴다는 것은 더욱 더...그리고 블랙 까지...

* 한국에는 언제쯤 출시 될지....

Apple...Intel을 만나다.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지난 10일 미국 San Francisco 에서 열린 Macworld Expo 2006 에서 Intel Dual Core 프로세서인 Core Duo 프로세서가 장착된 MacBook Pro와 iMac을 발표 하였다.

드디어, Macintosh 까지 인텔칩셋이 사용되는 날이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AMD CPU를 사용했으면 했지만...)

인터뷰를 보니 OSX 가 아닌 다른 OS가 설치되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고 하니, 윈도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아무쪼록, Apple...화이팅!!

* PS :
예전 Powerbook이 MacBook 으로 이름이 바뀐것인가?
AMD CPU를 쓰면 안될까?

[기사] 타임즈 :: How Apple Does It

[본 포스팅은 기존 블로그 자료를 복원한 것입니다.]




The Core: The Apple team, from left: engineering vice president Fadell, iPod head Jon Rubinstein, industrial design chief Ive, CEO Jobs and marketing director Philip Schiller
From the Magazine | Cover Story
How Apple Does It
Conventional wisdom says its strategy is wrong, yet it keeps turning out great products. TIME looks inside the world's most innovative company
By LEV GROSSMAN / CUPER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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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애플 컴퓨터라 불리우는 한 회사에 대한 기사이면서, 동시에 음악은 물론 비디오까지 재생시켜서 사람들이 즐기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아이포드 신형에 대한 기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본 기사는 결국 새 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오해받은 부분도 있는지를 드러내는 기사이다.

잠시만 애플을 생각해 보자. 정말 독특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장수도 장수이거니와, 성공도 성공대로 해낸 회사다. 바로 그 점을 잊기 쉽다. 대부분의 하이테크 기업들이 한 두 분야에만 집중하는 반면, 애플은 한 번에 그 모든 분야를 다 해낸다. 애플은 자사의 하드웨어(아이북과 아이맥)를 만들 뿐만 아니라 이 하드웨어에서 돌아가는 운영체제(맥 오에스 텐)도 만들고, 이 운영체제 상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아이튠즈와 아이무비, 사파리 웹 브라우저 등)도 만든다. 게다가 위 모든 제품에 연결되는 소비자용 가전 제품(빠르게 친구를 늘려가는 아이포드 제품군)도 만든다. 그 뿐이랴. 애플은 그러한 디바이스에 콘텐트를 제공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도 운영한다. 요컨데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델, 소니를 하나로 합쳤다고 볼 수 있다. 그래야만 애플의 기술적인 범위와 다양성이 어느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어째서 사업을 그런식으로 할까? 전통적인 교훈을 좇는다면, 애플의 상태는 형편 없어야 한다. 한꺼번에 모든 일을 해 보시라.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그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애플 방식으로는 혁신은 커녕 미국 내에서 사업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모델인 아담 스미스 모델에서는 개방 경쟁과 자유의 결과로 더 좋고 더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지만, 본질적으로 애플은 폐쇄적인 자신만의 미니어쳐-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소련이라도 돌아왔나? 왜 맥 오에스 텐을 델로 라이센스하지 않는가? 적당한 하드웨어를 택해서 시장이 선택하도록 하면 안 되는가? 이 위대한 미국 시장에서 스티브 잡스는 사소한 경쟁도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있다... 애플은 지난 30년간 세 가지 기술 혁신을 제공한 회사다. 애플 II와 매킨토시, 그리고 아이포드이다. 지난 6 주일 동안만 해도 애플은 나노라 불리우는 초박형 아이포드와 비디오 아이포드, 그리고 방 안의 소파에 누워서 한 손에 리모콘을 들고 키보드를 헤칠 필요 없이 컴퓨터를 돌리게 해주는 Front Row를 발표하였다.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이 죄다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CEO 스티브 잡스에게 한 번 물어보자. 그가 이야기를 좀 해줄 것이다. 컨셉트 카의 우화라고 부를 수 있다. 애플의 하얀 광채가 빛나는 실리콘 밸리 본사는 한 아이비리그 대학과 아이포드 중간쯤 어울리게 생겼다. 잡스가 직접 답해준다. ”이 동네에 회사들 엄청 많습니다. 컨셉트 카를 어떻게 보는 지 아시겠죠. 이게 정말 멋지다면 4 년 정도 후에 생산되겠죠? 안 좋으면? 그래도 생산됩니다. 무슨 일이 나겠어요? 결국 나옵니다! 그들 손에 달린 거죠! 그러면 결국 대패하게 됩니다! 일단 디자이너들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를 구상해요. 그 다음에 그 아이디어를 엔지니어들에게 가져가죠. 엔지니어들이 ‘못 해요. 불가능해요.’라고 한다면 일이 꼬이는 겁니다. 그러면 제조 공정에 가져가게 되죠. ‘우리 이거 못 만들어요!’라고 하면 정말 꼬이기만 하게 됩니다.“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돌아왔을 때 애플의 상황이 그러했다. 그와 디자인 책임자, 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가 사탕 색상에 브라운관 튜브를 합친 아이맥을 선보였을 때다. (이 아이맥은 만화 Jetson에서 막 나온 듯 해 보였다.) 잡스는 그 때를 회상하였다. “정말 딱 들어맞았죠. 아이맥을 엔지니어들한테 들고 가니까 엔지니어들이 38 가지 이유를 들면서 못한다고 고집부리더군요.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오. 아닙니다. 우리는 이걸 합니다.’ 그랬더니 왜 하냐고 묻데요. ‘제가 CEO입니다. 이건 될 거에요.’ 결국은 궁시렁대면서 했습니다. 그리고 큰 히트를 쳤죠.“

이 이야기에서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협력이요, 다른 하나는 통제이다. 애플 직원들은 ”깊은 협력“이나 ”부서별 분화“, ”병행 엔지니어링“에 대해 줄기차게 논하곤 한다. 결국 제품이 팀에서 팀으로 전해지지 못한다는 의미다. 순서별 개발 단계같은 것은 없다. 대신 동시 다발적인 조직체로 운영된다. 디자인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모든 부서가 한 번에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이때 디자인 검토는 모두가 함께 한다. 관리자들은 다른 곳에서 직원들이 회의하느라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지적한다. 애플이 돌아가는 방식이 이러하다. 그리고 애플은 그점을 자랑스러워 한다. 영국식 수염을 기른 부드러운 아이브의 말이다. “우리처럼 야망이 많다면, 제품 개발을 계층적으로 하는 방식은 안 통합니다. 도전이 정말 복잡하다면 좀 더 협동해서 통합적인 방식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애플 안의 누구나 그러한 협력을 거의 완벽한 화음으로 부를 것이다. 그들은 Kool-Aid를 다같이 마실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맛도 똑같다. 그리고 자신들이 성공중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한 수석 부사장의 농담이다. “소니 사람들이 저 건너편에 망원경을 갖고 있어요. 4층을 빌렸대나.“ 이 업계 농담이 이렇다!) 무시무시하잖은가. 애플 직원들은 다 똑같아 보인다. 게다가 자기들이 지구에서 간택된 사람들이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맹목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일하지 않는다면 이 빌딩에 있는 다른 모두는 그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잡스의 우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교훈은 통제이다. 사실 이 교훈은 잡스 그 자신에 관한 교훈이기도 하다. 그는 기술 업계 최고의 혁신가 중 하나이다. 이는 그가 엔지니어라거나 프로그래머라서가 아니다. 그는 MBA조차 갖고 있지 않으며, 대학 학위도 없다. (그는 한 학기만 다닌 후 Reed College를 중퇴하였다.) 잡스는 디자인과 인재 발탁,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굉장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분명 잡스는 어울리기에 완벽하게 즐거운 인물이다. 게다가 여러분의 말을 그는 경청한다.??그러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가령 아이맥의 모든 포트가 손닿기 어려운 뒷면에 있어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 입을 다문다거나 마음을 바꿔먹지 않는 한 린치당하게 될 것이다. 잡스가 친절하게도 애플 아이튠즈 개발팀을 맡은 이에게 필자를 소개했을 때, 잡스는 그를 만나는 것은 자유지만 절대로 기사에 이름을 써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 경쟁사가 자신의 인재를 빼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름만은 괜찮지만 성만은 절대로 안 돼요.” “이름이 뭐길래요?” 그의 이름은 제프이다.

다르게 말해서 잡스는 그 자체가 통제력이다. 잡스 안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도 하고, 매우 많기도 하다. 가령 애플은 잡스가 지닌 개인적인 정신의 표현이다.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잡스가 소프트웨어 만들기에 문제를 겪을 경우, 자기가 모르는, 혹은 자기가 해고할 수 없는 누군가가 만든 하드웨어 상에서 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원한다. 그가 말하는, 아니 주장하는 통합이 사소하게라도 구석구석 되어 있다. 그 누가 잡스만큼 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기술에 대해 까다롭기 때문에 그는 통제를 원한다. 마치 푸아그라와 미식가와 같다. 그는 네트워크화 된 세상에서 기기들이 자기 일만 할 수는 없다면서 서로간에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단 그 대화록을 잡스가 작성해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잡스의 말이다. “소프트웨어를 이 회사가 만들고, 하드웨어를 저 회사가 만들면... 안 됩니다. 그래서야 혁신이 빨리 이뤄질 수 없죠. 통합이 제대로 잘 못 일어납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게 되죠. 혼란 뿐입니다.”

사업을 돌리는 방식이 이것 하나 뿐만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보자. 빌 게이츠는 운영체제에 집중한다. 그는 하드웨어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라이센스 요금을 낼 수 있는 누구에게라도 윈도우즈를 제공하였으며, 하드웨어는 그들에게 맡겼다. 결과? 시장을 차지했으며, 역사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 애플은 거의 애플 하드웨어에만 맥 운영체제를 가둬두었다. 도덕적인 승리, 혹은 기술적인, 미학적인 승리를 애플이 거뒀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업적으로 애플은 패배자였다.

그러나 잡스는 더이상 이기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패배도 기꺼이 감수하려든다. 그저 뒤쳐지지 않기 위할 뿐이다. 말하자면 승리의 접근 방식을 바꾸었다. 아이포드는 디자인과 사용의 편리성이 기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으며,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도 물리적인 디바이스와 온라인 서비스의 부드러운 통합이 먹힌다는 점을 드러냈다. 아이포드부의 엔지니어링부 부사장 토이 퍼델(Tony Fadell)의 말이다. 그는 첫 번째 아이포드의 개념과 제작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품의 정의가 그동안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아이포드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이고, 아이튠즈와 아이포드, 소프트웨어가 모두 아이포드와 같이 돌아갑니다. 통제력이 없는 회사들이 너무 많아요. 아니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있어서 진정 협력을 못 하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통제의 한 측면이다. 다른 측면도 있다. 잡스가 받아들인 사실, 다른 이들은 피하지만 잡스는 맞서려는 그 사실은 새로운 것들을 만들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혁신은 문제를 일으킨다. 차라리 피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사실 혁신은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모두들 포기한다. 그러나 잡스는 그렇지 않다. 그는 영리한 것 이상이다. 잡스는 여러분의 어깨 너머를 보고는 오늘 저녁 당신이 사무실에 있게 될테기 때문에 저녁 예약을 할 수 없다고 일러두는 그런 사람이 되려 한다. 다르게 생각하라.

그가 말해주는 우화의 끝은 아이맥 판매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다. 잡스의 회상이다. “그 때 애플 사람들 중에는 떠난 사람들도 있죠. 사실 제가 해고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제 겨우 이해했다고들 이야기하죠. 이런 일을 7년동안 계속 했습니다. 이제 애플 안의 누
구나 다 이해해요. 이해하지 못하면 나가야죠.”

잡스가 헤지펀드를 운영하거나 군대를 통솔한다면, 그렇게 잔인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말 쿨하게 비쳐질 뿐만 아니라 쿨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수만 장의 벽보로 레논과 간디를 올려놓은 장본인이 잡스다. 그리고 그의 접근 방식은 또다르게 혁신적이고 빛나는 새 아이포드를 만들어냈다. 15 개월 전에 소개한 바로 전 모델과 가격은 같지만(229 달러), 새 아이포드는 메모리가 더 많아졌고(예전의 20기가에 비해 30기가로 바뀌었다), 더 얇아졌다(이전의 1.52센티미터에서 현재 1.09 센티미터) 게다가 비디오도 돌릴 수 있다. 화면은 직경 6.35 센티미터이지만 굉장히 밝고 굉장히 날카롭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커보인다. 이 아이포드 또한 아이포드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들, 그런 제품이다.

물론 포터블 비디오 플레이어는 아이포드 말고도 많이 있다. 그러나 누구도 새 아이포드만큼 쓰기 쉽거나 멋지지 않다. 아이포드는 잡스의 말마따나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와 함께 부드럽게 잘 돌아간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에서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가격대로 비디오 콘텐트를 구입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뮤직 비디오와 몇 개의 픽사 단편, 그리고 LOST와 위기의 주부들을 포함한 ABC 방송사의 드라마 등) 이런 것이 바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해 주는 애플의 통합이다.





현재 디지탈 뮤직이 미래이며, 애플이 그 수호자가 되리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포터블 비디오에 있어서도 수호자가 된다면 정말이지, 현대 문화의 공용어를 차지한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음악은 중요하다. 그러나 스케일이 확실히 다르다. 보통 최고로 잘 팔려나가는 음악 앨범은 일 주일에 30만 장 정도이다. 그런데 최고로 시청률이 높은 텔레비전 쇼는 3천만 명의 시청자를 갖는다. 영화 광고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단편, 예전의 텔레비전 쇼, DVD엑스트라와 비슷한 영상, 그리고 전체 텔레비전 산업은 방향을 새로 잡아야 할, 새 수입의 원천에 굶주려 있었다. 물론 노루표와 같은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 아이포드의 잠재성은 너무나 막대해서, 천하의 잡스마저 짐짓 물러서게 만들 정도이다. “아직 포터블 비디오용 시장이 현재 없습니다. 음악 듣기를 원하는 수백만 명에게 아이포드를 팔게 되겠죠. 비디오는 그에 따르게 될 겁니다. 비디오 콘텐트를 보고 싶어한다면 아이포드에서 보게 되겠죠. 어떻게 될지 한 번 지켜 봅시다.” 맞아요, 맞아. 우리는 지켜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여기까지 아이포드와 함께 왔다. 그리고 그 운전사가 누가 될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KMUG 에서 불펌했습니다.
위민복님의 글이라는 군요....(우선 감사를...)